공자의 '이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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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공자의 '이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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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다(지우학·志于學). 서른에 삶을 오롯이 세웠으며(이립·而立), 마흔 살에 이르러 미혹됨이 없어졌다(불혹·不惑). 쉰에 천명을 깨달았고(지천명·知天命), 예순에는 무슨 말을 들어도 화가 나지 않게 되었으며(이순·耳順), 일흔에 이르자 마음 내키는 대로 해도 경우에서 벗어나는 일이 사라졌다(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

 

공자가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며 한 말이라고 한다. 

나는 여기에서 '이순'이라는 말을 가장 지니고 싶다. 무슨 말을 들어도 화가 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떠한 경지일까. 

작은 일에도 부르르 떨고 화를 내는 나는 저 모습이 그 어떤 것보다 갖고 싶다. 마흔에 미혹됨이 없어졌다고 하는데, 그건 나이를 많이 먹어도 어려울 듯 싶다. 작은 유혹에도 흔들리는 나이기에, 

최근에 월가에서 투자로 유명한 사람이 엔비디아를 샀다고 했다. 물론 나도 엔비디아가 오를 대로 올랐고, 더 이상 오르기 힘들다는 사실을 어느정도 인지하고 있었는데, 이미 많이 올랐음에도 혹시? 라는 생각에 고점에서 매물을 샀고, 한 동안 내가 산 가격보다 떨어져서 마음고생을 했다. 원금회복을 하고 어느날, 투자의 대가들이 엔비디아를 집어 던졌다는 뉴스를 봤다. 국민연금까지도 엔비디아를 팔고 다른 주식을 샀다는 것이다.(그들은 진작에 사서 수익은 많이 올린 상태였다.) 에잇. 더 이상 안오르나보다 하고 나도 겨우 손해안보는 지경으로 던져버렸다. 그 뒤로 서서히 10달러가 올랐다. 줏대없는 투자의 결말이다. 이런 소소한 일상만 보더라도 미혹함이 넘쳐흐른다. 인간이니 더 잘 살고 싶은 마음이고, 아직 풍요롭지 않으니, 그런 일이 생기는게 아닌가 싶다. 언제쯤 풍족해서 이런 것에 미혹되지 않을까. 재물로서의 풍족함이 문제가 아니고 마음의 문제임을 잘 알지만, 그래도 실제로 살아가는데 돈이 필요함을 알기에 슬쩍 미혹함에 눈감아본다.

 

 최근에 나를 무시하는 언행을 했을 때, 얼굴이 벌개지고 정말 기분나쁜 순간을 껶었다. 되돌아보니 내게 이순이라는 덕목이 있었다면 그냥 지나 갈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들었다. 언제쯤 그런 경지에 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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